아세안, ‘비상시 연료 공유’ 추진… 필리핀은 유류세 유예 논란

기사입력 : 2026년 0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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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필리핀이 의장국을 맡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은 공급 차질 발생 시 회원국 간 석유 및 가스 수요를 상호 지원할 수 있는 에너지 공유 체제 시행을 앞당길 예정이다.

필요량의 10% 이상이 부족한 역내 이웃 국가에 석유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조치는 중동 지역의 분쟁이 계속 격화됨에 따라 마련되었다.

앨런 겝티 필리핀 통상부 차관은 지난 13일 필리핀 타귁에서 열린 제32차 아세안 경제장관(AEM) 비공식 회의 직후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경제장관들이 올해 5월 정상회의를 앞두고 아세안 석유안보협정(APSA) 체결을 서두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APSA에 따라 회원국은 비상사태로 인해 석유 공급에 ‘심각한 부족’이 발생할 경우 아세안 석유위원회 사무국에 긴급 지원 통지를 보낼 수 있다.

‘심각한 부족’이란 한 국가가 최소 30일 이상 연속으로 정상적인 국내 수요의 10% 이상이 부족한 상황을 겪는 것을 의미한다.

긴급 상황에 처한 국가는 다른 아세안 국가에 지원을 요청하기 전 수요 억제, 연료 전환, 가격 급등 방지 및 정보 공유 등 석유 수요 감소를 위한 단기 조치를 먼저 시행해야 한다.

APSA의 ‘공동 비상대응 조치’에 따라 모든 회원국은 긴급 상황에 처한 국가에 정상적인 국내 수요의 10%에 해당하는 석유 물량을 합산하여 공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석유 판매 조건은 “지원의 정신에 입각하여 아세안 국가들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는 방향”으로 당사국 간에 협상되어야 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앞서 필리핀이 약 50~60일 분량의 충분한 석유 비축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대국민 안심에 나선 바 있다.

구체적으로 가용 비축량은 경유 약 50.5일분, 중유 및 휘발유 각각 약 51.5일분, 등유 약 67.5일분, 항공유 약 58일분, 액화석유가스(LPG) 약 29일분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회원국들의 수출 물량 대부분이 장기 상업 계약에 묶여 있기 때문에 APSA에 따른 공유는 자발적이고 상업적인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필리핀 등 지원을 받는 국가가 현재 진행 중인 전쟁으로 인해 급등한 시장 가격을 여전히 지불해야 함을 의미한다.

필리핀 에너지부 산하 석유산업관리국에 따르면 2024년 필리핀 내 여러 산업의 석유 제품 수요는 총 1억 8,450만 배럴에 달했다.

아세안은 원유의 대부분과 액화천연가스의 상당 부분을 중동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어 해당 지역의 긴장 상황에 매우 취약하다.

이란 전쟁의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교통이 차단되면서 동남아시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에너지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타 아세안 국가 정부들이 연료 가격 안정을 위해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며 직접 개입한 반면 1998년 제정된 법률에 따라 석유 산업의 규제가 철폐된 필리핀은 예외다.

필리핀 현지 정유사들은 국제 원유 가격, 환율, 운송비 및 정제 비용 등을 토대로 자체적인 가격을 책정한다.

유가 상승세가 지속되자 필리핀 의회는 연료 제품에 대한 유류세 부과를 유예할 수 있는 비상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법안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0페소(0.17달러), 경유 가격은 리터당 6페소(0.1달러) 인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책 싱크탱크인 경제개혁행동(AER)은 유류세 유예 조치가 국내 연료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소득층 가구에만 주로 혜택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AER은 정부가 필수 산업 부문에 선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AER은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정부가 부유층 가구의 연료 소비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막대한 국가 재정을 희생하는 셈이 될 것”이라며, “저소득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필수 부문, 특히 대중교통에 대해 한시적이고 선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밝혔다.

또한 AER은 재무부 자료를 인용하여 유류세 부과를 유예할 경우 5월부터 12월까지만 약 1,350억 페소(22억 달러)의 세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국가가 이미 예산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 여건을 크게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해당 유예 조치가 연료 소비의 ‘불균형적’ 비중을 차지하는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역진적인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재무부 추산에 따르면 상위 10% 고소득층 가구가 필리핀 전체 연료 소비량의 약 48.8%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는 약 13.9%를 소비하는 데 그쳤다.

나아가 자동차를 소유한 필리핀 가구는 약 6%에 불과하므로 대다수 국민은 이 정책의 직접적인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할 것이라고 AER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