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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하 작가의 서평] 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진실한 연민’이란 무엇인가를 파고든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우연히 탈북 청년 로기완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를 찾아 벨기에 브뤼셀로 떠난다. 그 여정의 시작이 로기완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신이 병든 소녀 윤주에게 남긴 상처와 죄책감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마음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로기완의 행적을 쫓으며 그 과정에서 그녀는 진정한 연민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다.
로기완은 탈북 과정에서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의 시신을 팔아 마련한 돈 650유로를 들고 브뤼셀에 도착한다. 작은 체구의 초라한 동양 청년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열흘 가까이 브뤼셀 거리를 헤매던 로기완은 가진 돈이 바닥나자 한국 대사관을 찾는다.
북한을 탈출하며 신분증 일체를 버린 로기완을 향해, 한국 대사관은 그의 이야기가 거짓이라 속단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난민 자격을 얻을 가능성을 차단당한 로기완은 추운 거리로 내쫒기고 굶주림과 추위로 쓰러진다.
그들은 아마 거리낌 없이 말할 것이다. 단지 법대로, 절차대로 했을 뿐이라고. 법과 절차는 과연 인간의 존엄에 우선할 수 있을까? 로기완의 이야기를 온전히 신뢰할 수는 없더라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진정성을 살펴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는것 아닌가? 그러나 대사관의 응답은 일방적이었고 그의 간청은 배제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진정한 악이란 생각하지 않음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타자의 고통에 눈감은 채 “나는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차가운 태도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무사고의 죄에 해당한다. 타인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가, 그 권한에 따르는 책임과 윤리를 외면한 채 편의와 매뉴얼 속으로 숨어버린다면 그것은 약자에겐 소리없는 폭력이 된다.
길에 쓰러진 로기완은 고아원으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원장 엘렌을 만난다. 로기완의 사정을 알게 된 그녀는, 한국 대사관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분노하며 벨기에 내무부에 직접 연락을 취한다. 그리고 마침내 로기완이 난민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엘렌을 통해 우리는 연민이 단지 부드럽고 따뜻한 감정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연민은 때로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분노이며, 고통받는 이의 곁에 서는 도덕적 결단이고, 타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책임이자 실천이라는 것을 엘렌은 보여준다.
난민 신청국의 심문실에서 로기완은 통역사이자 심사관인 박을 만난다. 박은 로기완의 진솔한 이야기에귀를 기울인다. 그는 로기완의 난민 자격 취득을 위해 자신의 지위와 힘을 발휘해 최선을 다한다. 로기완이 난민 지위를 얻은 이후에도 그는 인연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 늘 먼저 맛있는 음식을 들고 로기완을 찾아오고, 로기완이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된 후에도 번역을 즐겁게 도맡는다.
나태주 시인은 말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박은 로기완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그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랬을 때 그의 마음에 예쁜 연민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서로의 마음에 소통의 다리가 놓이고, 마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박은 보여준다. 경청은 단순한 듣기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삶 안으로 끌어안고 보살피는 것임을. 경청이야말로 진정한 연민으로 나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2009년, 처음으로 캄보디아에 선교여행을 왔을 때 나는 이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아이들의 맨발, 허름한 집들, 그러면서도 환하게 웃던 얼굴들. 그 모든 것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언젠가 이 땅에서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마침내 작년 10월, 나는 그 꿈을 따라 이곳 캄보디아로 왔고, 지금은 바라던 대로 캄보디아인들과 한 집에서 동고동락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처음 이 땅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연민의 감정은 과연 ‘진실한’ 연민이었을까? 혹시 나는 가난과 결핍의 외형만을 보고 내 잣대로 그들의 삶을 섣불리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연민이라는 이름으로 방관자의 자리를 합리화했던 것은 아닐까? 그 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그로 인해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내가 그저 연민의 감정에 머물지만은 않았다는 것. 그 연민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는 것. 이제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연민의 감정이 지금 이곳에서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일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살아가는 지금, 나는 매일 작은 ‘연민’과 마주친다. 함께 사는 청년들이 긴 하루를 보내고 지친 얼굴로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밥을 먹을 때, 어려운 형편 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생하는 모습을 볼 때 연민으로 가슴이 저려온다. 그렇다고 항상 내 가슴이 연민으로 가득한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타국에 홀로 살아가는 나는 누가 위로해주나 우울한 자기 연민에 빠져 그들을 품을 여유가 없을 때도 있다. 자주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들이 얄밉기도 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연민을 감당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들어주고 내 이야기도 들려줌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충분히 오늘을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이곳에서 연민을 배운다.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진짜 이웃이 될 수 있도록.
글 이미하
- <오십, 질문을 시작하다>의 저자
- 클래식 북스 북마스터 8년
- 다수의 온·오프라인 책모임 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