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예술 이야기] 두번 째 이야기 – 음악과 사회

기사입력 : 2020년 08월 03일

1975년, 들리는 거라곤 총소리뿐이었던 어느 허름한 차고에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5년 뒤, 차고에서 열렸던 음악 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의 센터로 퍼져나갔고, 11명이었던 단원 수는 근래에 이르러 30만 명에 이르렀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오늘이라는 새로운 삶을 선물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엘 시스테마’ 이다. 바다건너 먼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우리는 ‘엘 시스테마’의 이야기에서 캄보디아의 많은 것들을 바라 볼수도 있다.

29_page01▲ 다큐영화 ‘엘 시스테마’ 포스터

마약과 범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범죄의 대물림과 빈곤의 악순환이 끓어지지 않던 베네수엘라에서 ‘기적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운동을 통해 음악 교육을 실시하면서부터 많은 변화들이 다가왔다. 가장 눈여겨 봐야할 것이 청소년들에 의한 범죄율이 낮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낮아진 범죄율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 짐으로 해서 여러 가지 다른 활동들이 시작되었다는 점 또한 눈여겨 봐야할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매우 크다.

생각해보라. 범죄 예방을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쏟아 붓던’ 예산의 절반도 되지 않는 돈을 교육에 투입함으로서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수 있었고 방과 이후에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음악 교육을 통해 범죄 활동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범죄의 길에서 돌아선 청소년들의 삶이 변함으로 그동안 지속되어 왔던 악순환의 고리들을 끓어 버릴 수 있었음을 뜻한다. 또한 이는 사회간접자본으로 투입되어 버려지던 많은 예산들을 아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왜 갑자기 ‘엘 시스테마’ 와 범죄를 이야기하며 경제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것은 음악의 사회에 대한 몇 가지 탁월한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와 영국의 ‘Sing up’ ‘in Harmony’ 프랑스의 합창교육, 미국의 오케스트라, 합창, 브라스밴드 등의 음악교육 시스템은 청소년들의 정서순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경제적 이슈를 바라보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먹고 살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는 요즘 현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보라. 한쪽으로 치우쳐진 교육의 폐해로 인해 우리는 전인교육에서 대학입학과 이에 따른 경제의 노예를 양성하는 교육으로 너무나 치우치고 있는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나라들을 이런 현상을 방비하고 사회적인 인격체를 양성하고자 음악교육을 통해 작지만 그들만의 사회적 적응력을 길러주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음악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것이다. 오케스트라나 합창은 여러 사람의 소리를 하나로 만들어가는 작업이므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희생 그리고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울수가 있었다는 것과 체계적이고 철저한 공부이므로 음악 이외에 다른 학문을 공부함에 있어서도 집중력과 이해력에 대한 여러가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 청소년들의 음악회 관람이나 전문 교육에 대한 투자는 예술에 대한 긍정적 소비로도 볼 수가 있다. 현재의 부모님 세대에서 자녀들에 대한 이런 지원은 결국은 청소년들의 정서형성에 순기능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것은 이들에 의해 과거와 현재의 문화예술이 미래에 전달되고 이들이 문화예술과 역사의 지킴이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네번째는 훌륭한 음악예술교육은 사회간접자본을 아끼는 지름길이다. 범죄 예방을 위한 예산, 발생한 사고에 대한 후속 조치에 따른 예산, 재교육에 따른 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것과 이에 대한 잉여 예산을 교육에 투자함으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섯번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래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을 잃어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어떤 금전적 가치보다 높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 캄보디아는 청소년 사회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성장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세상도 요란한 듯하다. 왜 이럴까? 필자는 우리가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있다. 아마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은 마음의 풍요가 아닐까 한다. 인간 사회가 아니라 경제사회로 발전하면서 함께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들이 삶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저 구석 한켠에 있다보니 많은것들에 대한 불감증의 시대가 올 수 밖에 없다.

People are seen carrying bags and packages as they cross the Colombian-Venezuelan border over the Simon Bolivar international bridge after shopping in Cucuta, Colombia▲ 지옥같은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주변국가로 탈출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사람들

역사는 순환이요 반복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엘 시스테마’ 이전의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은 자유를 가졌던 것이 아니라 버려져 있었던 것이며, 방종에 노출이 된 것이었다. 캄보디아에서는 무엇 때문에 부모들에 의해 아이들이 예술교육의 현장으로 보내고 있을까? 이것은 무엇을 위해서 일까? 보편적으로 이 땅에서 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아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예를 들어보자면 한국인 가정이나 외국인 가정들 그리고 현지의 부유한 가정을 예로 들어볼수 있을것이다.

한국인 가정의 부모 입장에서는 언젠가 본국에 돌아갔을때 내 아이만 시대에 뒤쳐져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예술교육을 시키지는 않는가? 캄보디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아이들에게 예술교육을 시키는 것은 젊은 부모들이 해외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당신이 가진 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어떤 방식이 되었던 예술교육은 캄보디아에서도 진행이 되고 있다. 필자가 처음 프놈펜에 도착하던 해에는 음악학원이라고는 2개만 있었을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어림잡아도 그때보다 10배는 더 많아졌다. 아직까지 아쉬움이 있다면 초등, 중등 교육과정에 예술 교육은 빠져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야 많은 이들이 예술교육의 필요성은 깨닫고 있으나 목적에는 차이가 많이 느껴진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 시대의 키워드는 문화와 감성이 바탕이 된 창의적 인간이 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이 제대로 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부모들의 할 일은 청소년들에 대한 좀 더 다양한 기회 제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2류기룡 교수

경북대, 러시아국립차이코프스키음악원(석·박사)
캄보디아 왕립예술대학 교수

성악가, 합창지휘자, 콘서트 프로듀서
NGO활동가로 동남아, 한국, 유럽에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