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트럼프와 훈센

기사입력 : 2016년 11월 30일

훈센 총리의 영감과 용기가 참 놀랍다. 미국 대선 투표가 실시되기 5일 전, 훈센 총리는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고 그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김정은,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러시아의 푸틴 등 독재자들의 트럼프 지지에 맞춰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CNN 등 유수 언론들이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여론 조사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의 당선과 그에 대한 지지를 사전에 밝힌 것이다. 트럼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인물이라는 것이 지지 이유였다. 미국 대선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밀접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세계 정상들은 내놓고 어느 후보에 대한 지지 표명을 하지 않았다. 누가 당선되든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당선 확률이 낮고 거친 언행과 특이한 이력으로 자주 입방아에 오른 후보에 대한 지지 표명은 그 자체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훈센 총리는 용감하게 그를 지지한다고 공표했다.

캄보디아와 미국의 관계는‘불가원불가근’이라는 말로 표현하면 적절할 것 같다. 미국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국이지만 캄보디아는 인근 국가인 미얀마나 라오스, 태국과 달리 미국의 영향력에서 좀 벗어나 있다. 현재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지만 과거 오랜 기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 온 역사가 두 나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전쟁시 미국에게 당한 피해도 그 요인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이에 반해 중국과 캄보디아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캄보디아에 대한 중국의 유무상 원조 규모는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중국의 캄보디아 투자 또한 갈수록 늘어나서 캄보디아의 경제 발전을 견인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훈센 정부의 중국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남중국해 문제로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에 대항해서 세력을 결집하려는 움직임에도 제동을 걸어 같은 회원국들로부터 빈축을 사는 일도 있었지만, 훈센의 중국 편향 외교 정책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훈센 총리에게는 중국이 ‘든든한 큰 형님’이다.

서구 제국주의 시대가 동진 정책을 펼치던 무렵, 캄보디아는 꺼져가는 등불이었다.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어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시아누크가 추구해 온 외교 노선은‘줄타기 외교’라는 말로 정리된다. 때로는 러시아와 중국에 붙고, 때로는 미국에 붙어서 나라의 명맥을 이어 왔다. 이에 따라 이념 대립이 격화되고 정파별 싸움이 일어나서 급기야는 급진 개혁 세력인 폴포트의 집권을 가져왔고, 캄보디아 사람들은 캄보디아 근세 역사상 가장 불행한 시대를 감내해야 했다. 이런 파란만장한 역사의 중심에 시아누크가 있었다. 그에 대한 공과는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왕이자 지도자로 숭모하고 있다. 그 뒤에 훈센의 역사가 이어진다.

웬만한 대학 졸업식장엔 꼭 훈센 총리가 등장한다. 졸업생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졸업장을 나눠 주기 위해서다. 대학을 마치고 나서 보통 6개월 이상 지나야 졸업식을 갖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올 8월에 대학을 마친 프놈펜대학교의 졸업생의 학위 수여식은 내년 2,3월경에 있을 거라고 한다. 훈센 총리의 졸업식장 내방 스케줄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에 실권을 잡아 60대 중반까지 총리직을 지켜온 훈센은 이미 세계 최장수 총리다. 그 만큼 그의 힘은 막강하다. 그리고 그는 특이한 언행으로도 유명하다. 요즘에는 페이스북에도 자주 등장한다. 스스로 셀카를 찍어 올리기도 한다. 어설프게 보이는 사진도 있지만 그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그것을 즐긴다. 이런 훈센에게 기행과 막말로 대통령에 당선된 미국의 트럼프가 딱 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 그건 그렇고…한국에는 지금 대통령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