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이 보는 세상] 팔팔세바캄

기사입력 : 2016년 07월 18일

팔팔

구구단을 처음 배울 때 내게는 8단이 제일 어려웠다. 보통 위로 갈수록 어려워 9단이 최고여야 하지만 9단은 10 더한 뒤 1씩 빼어 보니 8단보다는 외기 쉬웠다. 그래서 8단이 가장 어려웠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중에서도 ‘88’의 답이 쉽게 나오질 않았던 것 같다.

여러 면에서 오늘날 지구촌 최고의 나라는 여전히 미국이다. 거기서 캄보디아로 오는 길은 타임머신을 탄 느낌이었다. 뉴욕서 항공기에 오른 순간까진 첨단의 시설에 깔끔한 환경, 그에 어울리는 시민들의 세련된 세상이었다. 환승 포함 꼬박 하루 정도 소요해 도착한 프놈펜 국제공항을 나서자 거주 꽉 채운 3년차가 되어가는 친근감 감안했음에도 후줄근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인천에서 환승하며 ‘미국 기분’을 공(功)들여 털어낸 몇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랬다.
물론 미국이라 하여 생각도 못한 고물(古物)이나 불편함이 없던 건 아니다. 뉴욕 지하철 출입 시설은 내 기억에 서울 지하철 1호선 초기에 사용된 회전하는 밀막대가 그대로 쓰이고 있었다. 부유한 동부 지역 몇 도시를 다녀 보니 곳곳에 나무로 된 전봇대가 꿋꿋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음식점이나 카페 가서 와이파이가 되지 않음을 당당히 알리는 곳들을 종종 만난 건 예외없이 와이파이 터지는 프놈펜 서양식 카페들을 떠올리며 의외였다.

그렇더라도 불과 하루면 닿는 최첨단 뉴욕의 현대문명에서 보자면 캄보디아는 원시시대라 하여 과언(過言)이 아니다. 제일의 도시 수도 프놈펜조차도 택시 이외 대중교통이란 전무한 실정이다. 최근에 시내버스 운행이 재개되었지만 아직은 텅텅 비어 다닐 만큼 불편한 수준이다.
버스 말고 다른 대중교통 통해 프놈펜에서 시엠립까지 가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구글 지도를 펼치면 320킬로미터 거리에 비행기로 40분 걸린다고 표기되어 있다. 1시간에도 못 미치는 숫자를 보자 그걸 8시간 가까이 소요하여 뱃길로 갔었던 입춘지절이 떠오른다.
실정이 이러한 건 모든 시설이 전파(全破)되다시피 한 아픈 현대사 탓이다. 철도 또한 예외일 수 없어 ‘사람용’ 열차 운행이 전무한 원시적 상황이다가 불과 몇 개월 전 시하누크빌행 여객용 열차가 14년만에 가동되었다. 종점 푯말에 263 적힌 시하누크빌역까지 이 또한 7시간을 넘어 8시간에 다가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시속 30∼40킬로미터 속도인데 현지인들 표정에는 감격이 넘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로는 전국 유일의 여객 열차인 것이다.

문명의 잣대론 초라하고 한심한 원시의 이 나라에서 그러나 나는 세상을 바꿀 만한 단서들을 감지한다. 캄보디아인들은 인류의 현대사에서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의 지옥을 다녀온 사람들이다. 시엠립 사원들의 부조 중에는 상상의 지옥도를 극악하게 새겨놓은 곳이 있는데 이들은 실제로 조각 속 원시적 학살의 상황을 그것도 동족에게서 겪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현대에 들어서며 지구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처참한 형태의 살육을 그들은 체험했다. 그 트라우마가 문득문득 드러나는 상황들을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로에서 클랙슨 울리지 않는 문화가 겸손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상대 기분을 상하게 하여 총을 맞을까 겁내어 그런 것이라는 해석에서도 슬픈 현실을 이해하게 된다.
결코 과장이 아닌 지옥의 내전과 원시적 문명을 불과 한 세대 전에 살아낸 그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이렇게 선할 수가 싶은 웃음이 배어져 나온다. 살기 위한 비굴함이라 폄하하더라도 내 보기엔 바탕의 선한 심성이 없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미소이다.

조사 기관과 방법에 따라 신뢰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지만 어떻든 캄보디아는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를 한 적이 있는 나라라고 자료들은 전한다. 그렇다면 같은 조사에서 100위를 넘는 순위를 기록했다는 한국이 배워야할 점 분명 있지 않을까. 실제의 지옥을 경험한 이들조차 ‘헬캄’을 외치지는 않는다면 양극화의 짜증 극심하다며 ‘헬조선’을 사는 우리로서는 체제를 개선해야 함 물론이지만 그와 별도로 그들의 행복 비결만큼은 존중하여 학습해야 하지 싶다.
우리나라의 숭산 스님과 더불어 세계인들에게 생불의 한 분으로 추앙받다 입적한 고사난다 스님의 존재도 이 나라에 세상을 바꿀 만한 힘이 있다는 근거가 된다. 미친 지도자에 의해 수백만 동포가 학살당한 나라에서 그분은 온몸을 던져 보복 대신 비폭력 평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15개 국어를 구사했다는 뛰어난 능력의 명상가였던 스님은 그 모든 것을 낮은 곳에 내려놓고 숲속의 수행자로서 심신(心身) 헐벗은 이 나라 민중들의 배경이 되어 오늘도 빛난다.
지옥에서 행복 길어올린 캄보디아의 기적을 보고 가면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선물 받을 수 있다. 현대 인류사에서 최악의 잔악함을 몸으로 겪었으되 세계의 많은 사진작가들에게 천사의 미소로 다가가 인화(印畵)되는 그들이다. 따라서 그 웃음들을 정면(正面)으로 만나면 어지간한 자신의 불운쯤은 웃어넘길 힘을 얻을 수가 있다는 걸 보장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한국인의 경쟁심은 유난하여 유전자에 각인되었다는 생각조차 든다. 다행이라면 그 억척스러움으로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인데 반면 옆집에 새 물건이 생기면 이유불문 장만하는 행태가 자연스러워 보이는 곳이 또한 한국이다. 그런데 그러한 비교가 위로만 향하고 있다는 데에 한국인의 불행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아래는 보지 않으며 아랠 보게 될 경우는 깔보려는 심보가 발동한다. 남아시아 국가들을 다니며 졸부 행세하는 못난이들이 심심치않게 등장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래를 폄훼(貶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 안는 순간 거기가 곧장 천국 아닐까. 그 시각을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나라가 캄보디아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민중을 ‘멕여야 할 개돼지’로 취급하는 고위 공직자가 넘치는 국가에게는 반드시 다녀가야할 나라가 된다.
요컨대 ‘인간 경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나라가 바로 캄보디아이다. 뱃길과 기찻길 8시간씩 ‘팔팔’거려야 지쳐지쳐 목적지에 다다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 미소’가 입에 물려 있는 나라 말이다. 나는 거기서 ‘세상을 바꾸는 나라 캄보디아[세바캄]’를 목격한다./한유일(교사, shiningda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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