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운 대한민국

기사입력 : 2015년 12월 04일

한국 연수 경험자들

11월의 마지막 밤 뜻밖의 소나기가 프놈펜을 적셨다. 물축제 연휴 끝나며 바야흐로 본격 건기로 접어드는 한편 이곳도 슬슬 서늘해져야 할 계절인데 더위가 누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때아닌 비처럼 찾아드는 이변(異變)들과 그에 대한 현명한 대처는 지구적 문제인 모양이다.
종종 들르는 동네 카페에는 외벽을 따라 바닥에 자갈을 깔고 물을 채운 공간이 있다. 거기에는 3센티미터 안팎의 무수한 열대어들이 주로 살고 있다. 그런데 큰 놈은 30센티미터 남짓 되는 잉어 계열로 보이는 물고기들도 대여섯 마리가 함께 헤엄친다.
물 높이는 잉어류의 몸이 간신히 잠길 정도로 낮지만 열대어에게는 충분한 수준이리라. 어떤 때 열대어 입장에서는 거함 느낌일 대어들이 달음질 칠 때가 있다. 목측(目測)으로 폭 2미터 미만에 길이 10미터가 채 안 되는 못에서 수적(數的)으로 1% 남짓일 그들의 폭주는 자못 대단히 위험스러워 보인다.

2003년부터 햇수로 3년 머물렀던 미얀마에 선거를 통한 개변(改變)이 기적처럼 찾아왔다. 때에 맞추어 야당 지도자 삼랑시는 과거 수지 여사와의 인연을 들먹이며 성급하게 꿈을 지폈다. 곧 캄보디아에도 민주화의 봄이 만개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총리는 삼랑시가 입국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어떤 인연(因緣)인지 그 시점 삼랑시는 대한민국에 머물고 있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매일 밤 프놈펜에 도착하건만 삼랑시는 그 비행기들을 탈 수가 없었다.
여러 정황들에 비추어 이 정도가 현재 캄보디아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수준이라 보는 게 적절하지 않겠나 싶다. 개방의 정도와 인터넷을 비롯한 인프라를 비교하여 미얀마보다 월등한 면들이 있다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몇 년 전 쓴 졸저의 관점에 근거하여 미얀마의 잠재력은 캄보디아를 훌쩍 능가한다고 본다.

말이 나온 김에 그러면 오늘 대한민국이 자국민을 대하는 자세는 어느 만큼일까 문득 궁금하다. 얼마전 들은 바에 따르면 교민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최선진 강대국에 견줄 만했다. 일례로 교민 학교를 지을 경우 일본보다도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스스로를 애국적이라고 의식해본 적이 많지는 않지만 바다 건너 나와 살면 애국심이 충만해진다. 미얀마에 머물렀던 10여년 전보다 한국의 위상이 훌쩍 높아진 걸 분명하게 느낀다. 부정할 수 없는 게 그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나에게 준 자부심이며 고마움이다.
평균적인 한국인을 가정하여 인류의 보편적 삶과 비교하여 보라. 최강대국 미국 시민들이 놀랄 정도로 현재의 한국인들은 매우 높은 생활수준을 살고 있다. 대학 졸업자 비율만으로 보자면 가히 세계 최선두급의 엄청난 국가가 ‘뉴밀레니엄 코리아’이다.

비단 교육 수준뿐이랴 지능 지수는 유대인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고 들었다. 또한 역사를 보자면 동아시아에서 주류 문화를 형성하며 반만년을 버텨낸 저력이 있다. 6년 동안 ‘월드 넘버 원’을 차지한 인천공항을 비롯해 ‘한국이 세계적인 10가지’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이 인터넷 조회수를 높이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한없이 우울하다 못해 초라할 지경이다.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자살률이며 이혼율, 동급 대비 현격(懸隔)한 최하여서 아프리카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행복 지수, 그리하여 모든 걸 포기한 젊은 세대들. 한국은 진정 요 ‘꼬라지’의 나라일까.
위대한 역사와 그에 따른 빛나는 유산들, 오늘날 세계 각국 여러 분야에서 눈부시게 두각(頭角)을 드러내는 모습들, 그런데 국내의 사정은 어찌 이리도 척박한 것인가. 물론 사람마다 타당한 이유들을 댈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여당의 무책임한 행정, 야당의 무기력한 대응 등 정치인을 탓하는 것 충분히 근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어릴 때부터 자기밖에 모르도록 기른 부모들의 가정교육 부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말씀도 매우 타당하다.

그래도 일국의 베테랑들인데 이번 미얀마 선거 결과를 맞으며 보여준 총리와 여당의 조치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국내 사정도 매한가지여서 열심히 국가의 명령을 받들어 경제 규모 10위권 나라를 만들고도 ‘지옥’ 같은 ‘조선’을 살아야 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대단한 듯하다. 그렇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양극화 이 꼴을 만든 주범을 찾아 정치인이든 재벌이든 증오를 퍼붓고 이도 저도 성에 차지 않으면 주변의 만만한 놈들 왕따라도 시켜야 분이 풀릴까.
그저 내 수준에서 진단하기로 한국, 이 정도면 나에게도 남에게도 조금은 너그러울 만한 경지에는 올랐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눈 치켜뜨고 나를 자학하거나 남 잘못 타내기 앞서 차 한 잔 하면서 자타(自他)를 공히 다독이기부터 하면 좋겠다. ‘카페 연못’ 열대어들이 백 배도 넘어보이는 존재들과 공존하는 비결은 나와 남을 긍정했기 때문 아닐까. 비록 낮은 차원 너그러움이겠으나 그들 질주에 혼비백산 몸을 비키면서도 못 살겠다며 생을 포기하는 열대어는 없어 보이는 때문이다. 참고로 성경을 여느 기독교 목회자보다 제대로 인용하며 현재 한국에서 많은 이들에게 최고의 길스승 한 분으로 인정되는 스님의 말씀 인용하며 글을 닫는다. 스님 말씀하신 ‘긍정’을 나는 ‘너그러움’이라는 단어로 대체해 생각 확장해보았음 사족으로 덧붙인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형편없다. 살만한 곳이 못 된다. 요즘 말로 하면 헬조선이다.’ 이런 생각 위에 이것저것 비판을 하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화가 자꾸 나서 폭동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 즉 파괴적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 하나입니다. 아니면 이민가고 싶다, 이렇게 회피 혹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나오는 것이 또 하나예요. 대한민국이 현재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은 맞지만, 완전히 뒤집는 혁명을 해야 할 때인지는 좀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긍정 위에 비판정신이 있어야 합니다.”/한유일 (교사 :  shiningda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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