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이 보는 세상] 싱폴 스타일

기사입력 : 2015년 04월 23일

한 방울 맑은 물

어쩌면 지난 세기의 마지막 거장일지도 모를 한 분이 막 지구촌을 떠났다. 여러 나라 정상들과 국민들은 애도 속에서 고인을 보내드리는 정중한 예를 갖추었다. 그 나라 사람들만이 아닌 많은 인류가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미얀마에서 지낼 때이니 십 년도 더 전 일이다. 어쩌다 싱가포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국 대학의 수준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하였다. 화가 나기보다는 부끄러움을 먼저 느꼈는데 그들의 말이 옳았던 때문이었다.
도시 국가여서 쉬웠다는 야박(野薄)한 평가도 있으나 싱가포르의 예는 한 지도자의 헌신이 국가를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여러 요인 들 수 있겠지만 나는 리콴유의 지도력을 첫 손 꼽는다. 지도력의 요체(要諦)는 솔선수범(率先垂範)이었다.

요즈음 홀로이 인문학을 공부하며 얻는 깨달음은 인간은 그렇게 착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재단(裁斷)컨대 유별(有別)나게 기준 세게 잡은 것 아닌데도 살아보니 세상엔 나빠 보이는 사람이 꽤 많더라는 나름의 경험 근거해서이다. 시각(視角)이 삐딱해서 그렇다고 비난한다 해도 뭐 어쩔 수 없다.
공자님 의하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 지났으되 겸손하고 착하다는 소리는 참 많이도 들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특별히 내게 아부할 일 없으니 상당히 객관적일 거라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선하다는 나 역시 성악설 쪽이 타당한 이론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얘기다.
리콴유는 인간의 선의에 기대어 사회를 구상하기보다는 악해질 가능성의 차단을 보았다. 공무원의 월급을 현실화한 것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그런 다음 강력한 도덕의식을 주문해서 맑은 사회를 이룩해낸 것이지 공무원들의 착함을 기대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요 뛰어나게 애국심이 강한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과 기회가 날 때마다 인문학적 대화를 나누길 좋아한다. 단순히 한 개인만 착하게 살면 되는 것이 아니란 점, 공적 영역에 대한 책임감에 눈길 나누어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살겠다는 뜻은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 다만 모두가 그렇게 나와 내 가족만을 챙기다 보면 공적 영역에서 저질러지는 부정과 비리를 다룰 수 없게 된다. 그런 각성에 대한 필요성의 공감(共感)을 불러 일깨울 수만 있어도 나의 역할은 십분(十分) 다하는 것이리라.
한때 무척 미워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얀마에 발 디딘지 일주일만에 달리 평가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물론 그의 독재로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이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종합적이어야 하며 부정적 감정이 많다 해도 최소 51%의 긍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힘들더라도 그를 인정해야 한다. 유신 말기 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국제기능경기대회에 나가 메달을 받은 학생들이 지도했던 스승과 함께 울며 기뻐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기꺼운 마음으로 개인의 영광과 나라의 영광이 함께 갈 수 있는 사회가 최고 사회의 하나라 믿으며 그에 근접(近接)한 나라가 싱가포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어에서 ㅇ과 ㄱ은 같은 위치에서 만들어지므로 뭉쳐 소리 낼 수 있다고 보았다. 모음 ㅡ의 경우는 생략이 용이하고 그럴 때 초성은 받침 없는 앞 음절의 받침으로 발음하면 된다. 그래서 ‘싱폴’을 만들어 본 것인데 ‘강남 스타일’ 음절수와 맞춰보려는 의도였을 뿐이다.
누군가 여기서 싱가포르를 모욕하려 한 것 아니냐고 읽었다면 그건 오독(誤讀)이다. 투명하게 발전한 사회인 싱가포르는 경제 10위권 그루터기 삼아 우리가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다. 오로지 노래 제목과 일치시켜 연상을 도우려는 생각이었음을 간파(看破)해 주시길 바란다.
내게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하라 한다면 그건 바로 ‘싱폴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리콴유는 내 짐작에 성선설을 믿은 분은 아니다. 오히려 단속하고 강제하지 않으면 쉽사리 악해질 소지가 많다고 보아 숨 막히게 규제 많은 나라를 만든 것이다.

생전의 리콴유는 동양의 탁월(卓越)한 지도자 세 사람을 말해달라는 우리 측 인사의 질문을 받는다. 처음의 인물은 덩샤오핑, 소련처럼 해체될 위기의 중국을 오늘로 이끌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음은 요시다 시게루, 한국전쟁이란 상황을 틈타 자국의 발전으로 연결한 실행력을 평가했음이다.
그 다음 사람을 꼽아달라는 지적에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한다며 말끝을 흐렸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 현직 대통령들은 자신인가 생각했다는 우스개도 있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직감했다.
서로의 다른 여건 때문에 한 사람은 피의 오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으로 꿈꾼 세상은 강력한 지도력 아래 국민 다수가 행복을 느끼는 사회의 건설이었다. 자신의 나라를 넘어 세계의 번영을 바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다음 기회엔 인류를 위하는 더욱 큰 영혼으로 돌아와 기여할 것을 믿으며 평안한 휴식 취하시길 기원한다.

행복함이 달리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