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이 보는 세상] 의로운 자본

기사입력 : 2014년 11월 20일

어떤 경영인이 있습니다.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을의 자유로를 밟으며 나눈 몇 가지 대화가 상큼했습니다. 새로 세운 공장이 일 년 이상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그는 버텼습니다. 버텨낸 동인(動因)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성실과 정직이었음을 알아냈다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변변한 수입도 없이 일 년을 보낸 사업가답지 않게 그에게선 자신감이 풍겼습니다. 그러한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모르겠답니다. 과장 섞였겠으되 반 이상의 자영업자가 망했다는 풍문 떠도는 살벌한 한국 상황을 헤쳐나온 자의 저력일지도 모른다 싶었습니다.

한 가지 무척 신기한 일이 있다며 그는 소년처럼 볼이 발그레해졌습니다. 비록 급전(急錢)이 필요할 경우라 해도 자신의 막막한 처지를 자기 관점 아닌 투자자의 입장에서 거짓 없이 설명해왔답니다. 오직 이 정도로 어렵다고 드러낼 뿐인데도 귀한 자금을 선뜻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매우 놀랐다고, 그래서 자신은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합니다.
옅은 흥분 탓에 다소 번다(煩多)했던 그의 설명을 듣고 직업병이 도져 그런 걸 ‘신뢰’라고 한다고 요약했습니다. 맞장구를 치며 그는 그렇게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복 아니겠냐 물었습니다. 강점(强點)은 미뤄두고 자기의 곤궁함 먼저 상대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사업가는 드뭅니다. 오히려 과장하여 허물을 감추는 걸 광고의 기술이라는 차원에서 미덕으로 보기도 하는 게 현대라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자기 부족함을 숨기지 않는 미련함이 도리어 신뢰를 얻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쳤습니다.
홍콩 최고 재벌 중 한 사람이 의롭지 않은 자본은 축적하지 않겠다고 했다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은 ‘견리사의(見利思義)’, 즉 이득을 보았을 때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라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했더니 깨끗한 부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차를 운전하며 자신의 복을 운운한 경영인이 갑자기 홍콩 재벌처럼 보이며 그만큼만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퍼뜩 지나갔습니다.

어둠내릴무렵

한국에서 소규모 기업가가 가야 하는 지난한 사업의 길, 그러나 모든 걸 걸고 치열하게 싸울 때는 진 적 없다고 합니다. 상대가 대기업일 경우에도 그쪽 입장에서 자신을 검토하고 보여준 뒤 자신의 잘못을 얘기해달라 했답니다. 그런 다음의 상대가 잘못을 못 찾아내고 단지 덩치 크면 이기는 한국적 상황으로 밀어부치면 전부를 걸고 싸웠다고 했습니다. 좀체 하지는 않지만 막상 벌린 그런 싸움에서는 패한 적이 없었고 상대는 결국 요구 사항을 들어주더라고 할 땐 조금은 존경 담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싸움의 뒤끝엔 양 극단의 평이 남는다 하더군요. 반응은 대개 본받을만한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칭찬과 함께 상종 못할 독한 놈이라는 흘깃거림으로 확연히 나뉜답니다. 듣다 보니 춘추전국시대 험난한 세월 동안 스승과 공문(孔門)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던 자공(子貢)의 질문이 연상되었습니다.
헌신적 지원 덕에 많은 사람의 호감을 얻었을 자공은 누구나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면 어떠하냐고 스승께 묻습니다. 아마도 자신을 염두에 둔 듯한 그의 물음에 뜻밖에도 공자는 긍정적 답을 주지 않습니다. 상식에 근접한 말씀을 많이 남긴 공자께서 여기서는 선인은 그를 좋아하고 악인은 그를 미워하는 자가 더 낫다고 말합니다. 그 장면 상상하자 위의 경영인 행동에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칭찬하였을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반면 사바사바 음성적 방법으로 자신 이익만 추구했던 사람들은 흘깃거렸을 게 분명했습니다. 잠시 동안의 몇 마디 오고 감을 통해 내게 공자와 제자의 문답을 연상하도록 만든 그는 고단한 사업의 길에서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그 정도의 인격 수준을 쌓아올린 건지 경이로웠습니다.

역지사지

무뚝뚝한 편이면서 좀처럼 흥분 않던 그가 최근의 환풍구 사건에 열 받습니다. 부실시공에 인재라는 언론들의 보도는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환풍구는 당연히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안전의식 부재가 먼저 도마에 올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듣고 보니 제대로 된 의문이었습니다.
문제점으로 흐른 김에 스타를 키우지 않는 분위기도 우리 사회 큰일이라 합니다. 상대의 장점을 보았을 때 그를 인물로 만들어 주면 결국 그 혜택이 자신에게도 돌아오거늘 그걸 모른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주워들은 규모 문제임을 슬쩍 끼워넣어 약간 잘난 체를 했습니다.
그는 아무래도 카르텔 문화 때문 아니겠는가 얘기합니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가른 뒤 자기 편이 아니면 옳고 그름을 떠나 씨를 말리려는 태도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얘기를 더 확대하면 공정함과 사회 정의까지 나올까 싶어 그 정도로 멈췄습니다. 사방에서 불타오르는 가을산들이 살랑살랑 손 흔들어 자신들을 보아주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가을은 참말로 명품(名品)입니다.

풍경 감상 위해서라도 서둘러 마무리 짓자면 내 머리를 뱅뱅 맴돈 건 사실은 희생양 문화였습니다. 근본 해결책이 어렵다는 걸 근거로 누군가 책임 지울 손쉬운 사람을 정하고 그에게로 모든 걸 몰아가는 저열한 행태 말입니다. 그리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씻은 듯 잊어버리고 해결했다 하는 그와 같은 악습은 미봉(彌封)의 전형(典型)입니다.
우연히 평생 별을 연구한 원로 천문학자 한 분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별들의 세계에서도 규모의 문제는 중요해서 덩치가 큰 그룹은 충돌을 견디는 힘이 뛰어나다 하더군요. 그 분 말씀을 따르면 지구촌에선 인구 1억 쯤 되면 그런 능력 된다는데 별 관심 없이 지내던 통일을 잠깐 생각해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자유의 가을길 살짝 밟았을 뿐인데도 생각들 꽤 쏟아진 건 대화가 제법 진중했다는 뜻일 겝니다. 이야기 상대가 누구였느냐 하는 것 또한 영향을 주었겠지요. 덕분에 우리 사회 어두운 면들 살풋 얹혔음에도 낙엽 스산함보다는 고운 단풍색에 눈길 주게 한 깔끔한 경영인과의 나들이였습니다.
그 경영인은 나의 절친입니다.

한유일(교사) shiningd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