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이 보는 세상] 잃어버린 지팡이

기사입력 : 2014년 09월 29일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바탐방 공항 활주로를 차를 타고 달려본 사람이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사람입니다.” 국립 바탐방 대학교에서 후진 양성에 인생 후반전 불꽃을 태우는 한국인 교수님의 유쾌한 유머였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활주로는 당장 항공기가 이착륙한다 해도 손색없을 번듯한 외양을 간직한 채 사라진 옛 영광을 눈 꿈쩍이며 그리워하는 듯했다.
전에 다녀갔다가 최근에 캄보디아를 다시 찾은 한국인들은 한결같이 놀란다. 불과 몇 년 새 괄목상대 달라진 모습이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꾀죄죄한 입성에 마주치는 이들의 눈길을 피하기 일쑤이던 현지인들이 주눅 들지 않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이다.
요즘만 같다면 캄보디아 사람들은 아득했던 앙코르 제국의 영광을 곧 되찾을 것 같을지도 모른다. 몇 백 년 내리막 역사가 가져다 준 상심(傷心)을 상쇄하고 존엄성과 자긍심이 넘치는 앙코르 제국 시대의 당당한 가슴을 되찾고 싶어질 만하다. 드디어 새 시대가 왔다며 자신들을 옥죄는 이웃 나라들의 심리적 억압에서 벗어나 세계만방과 자유롭고 정당한 외교 관계를 맺고 싶어지지 않을까.

국제적인 관광의 흐름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자연 친화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추세가 맞다면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국가들이 오히려 강점을 지닐 수 있다. 오랫동안 세계인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캄보디아는 그런 의미에서 역으로 축복을 받았다 해야 하리라.
바탐방 방문길에 만난 대표적인 환경 친화적 관광 상품은 일명 뱀부 트레인이라 불리는, 협궤를 달리는 탈 것이었다. 네 사람이 앉을 만한 평상 크기의 대나무를 엮어서 앞 뒤 두 축의 네 바퀴에 얹고 뒷부분에 모터를 간단하게 장착하니 준비가 끝난다. 가끔 심하게 텅텅거려 엉덩이 욱신거렸지만 제법 바람소리 귀를 울리도록 아슬거리는 속력을 곁들여 시원스런 맛을 선사하니 캄보디아판 롤러코스터라 불러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하나 더 에코적 관광지를 꼽는다면 박쥐들이 한 시간여 넘게 줄지어 나오는 장관을 보여주는 천연 동굴이다. 전에 온 적 있는 일행들은 그 수효가 이천만 마리더니 백 마리가 늘었다며 농을 했지만 일몰에 즈음하여 약속 시간이라도 지키려는 듯 질서정연하게 동굴을 나오는 게 경이로웠다. 세계를 두루 여행 다녀본 분의 말을 빌면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경쟁력 있는 볼거리라 했다.

뱀부트레인

바탐방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서양인들의 휴양 목적이 담긴 개발 도시란다. 부근에서 제일 고층으로 보이는 호텔에 묵으며 10층 옥상에서 둘러본 시내는 깨끗하고 깔끔했다. 공기가 프놈펜에서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라 거듭거듭 숨 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놀이가 된다.
내 느낌에 저간(這間)의 캄보디아는 개방의 바람에 실려 활성화되는 경제 투자와 정치 안정화를 반영하는 듯 시나브로 활기가 더해지고 있다. 바탐방에 묵으며 이틀에 걸쳐 점심과 저녁으로 세 군데 현지 음식점을 찾았는데 모두 만족스런 맛을 보여주었다. 덤덤한 듯한 친절함과 수줍은 미소는 압사라의 후손다운 관광캄보디아의 미래 자산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요소들 중에서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할 최고의 자산은 누가 뭐래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최고의 자연과 최고의 경제가 어우러진다 해도 그것을 버무릴 손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자신감으로 충만하되 국제기준의 소양을 갖춘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이 그래서 다시금 절실하게 필요해진다.

경제 활성화와 수도로서의 위상, 지속적인 건축 붐과 교통량 증가 등으로 프놈펜의 오염은 날로 심화된다. 매일 가래 한 덩이씩을 뱉어내는 아침의 일과가 바탐방 이틀간은 멎었다. 프놈펜이 잃어버리고 만 맑은 공기의 지팡이를 바탐방은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거기에 편안해 보이는 심리 상태, 캄보디아의 핵심 쌀 생산고로서 다른 지역들보다 부유한 경제 상태, 에코 관광지로 발전할 충분하고도 남는 가능성 등을 나는 보았다. 캠퍼스에서 마주친 대학생들의 얼굴에서 불과 몇 년 전에도 보였다던 그늘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넘어설 때가 되었다. 그 때란 국제적인 기준에 맞추어 능력을 연마하고, 무작정 습관인 듯 손을 벌리기보다는 건전한 거래를 바탕으로 떳떳하게 제 몫을 요구하는 실력을 갖추어야 할 때라는 말이다. 그러한 공부와 어여쁜 내면이 어우러질 때 잃어버린 황금의 지팡이는 머지않아 손에 들려있을 것을 믿는다.

그러자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점은 사과할 일 하였을 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순간 목숨이 날아갈 수 있었던 캄보디아의 슬픈 현대사를 국제인들도 알만큼은 안다. 동정하고 공감하며 트라우마가 치유되기를 아픈 마음으로 바라는 이들 역시 나를 포함하여 무수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가슴 아린 역사의 결과로 구천을 헤매는 수많은 원혼들이 후손들의 정성과 안정되어 가는 나라 살림에 웃음을 되찾아 올 프춤번에만큼은 상처를 씻고 마음껏 흠향(歆饗)하셨기도 더불어 바란다.
그러나 아픈 역사 겪었다 하여 모든 무례가 어리광처럼 수용되기를 더 이상 바라서는 안 되리라. 바야흐로 객관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을 내재화하여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새벽을 울린 호텔 주변 동네 사원들의 지나치게 커다란 챈팅 소리를 그들은 습관처럼 견딜지 모르지만 다시 찾아오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소음으로 느끼는 이가 더 많다면 고집할 게 아니라 고치려고 노력하는 게 맞다. 민속 명절을 맞아 그간의 한을 푸신 조상신들이라면 그들의 바람 역시 우물 안 개구리보다는 당당한 앙코리안일 것이지 않겠는가.
상대적으로 무슬림 국가들에서 들어본, 아침을 여는 사원들의 ‘알라 아크바∼르’ 염송은 볼륨이 크지도 않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만큼 잔잔해서 좋았다. 하지만 그 평온의 음색 좋다 하여 성전[지하드]을 소리 높여 외치며 공존을 거부하는 IS[이슬람 국가]식 코란절대주의마저 용납해줄 수는 없다. 남과 함께하는 객관적 척도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International’이란 공염불(空念佛)에 그치고 만다. 그러니 자신들 처절했던 상황을 빌미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습관을 끝내 버리지 않는다면 앞서 열거한 되찾아가는 무수한 황금의 지팡이들은 다시 숨어버릴 확률이 높다. 그리 되면 모처럼 돌기 시작한 캄보디아 발전의 시계는 아쉽게도 가속도를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 나는 그저 외부인의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신선한 에코관광을 만끽한 보답으로, 되찾은 보물과 함께 함박 피어나는 앙코르의 웃음을 보고 싶어 주절거려 보았다.

한유일(교사) shiningday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