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캄보디아 건축쟁이 소회

기사입력 : 2014년 02월 21일

“가장 지독한 감옥은 스위스인이 설계하고 독일인이 간수인 감옥이다. 워낙 엄밀하게 지었을 뿐만 아니라 감시 또한 물샐 틈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천국 같은 감옥은 이탈리아인이 짓고 프랑스인이 간수인 감옥이다. 워낙 허술하게 지어진데다 간수들은 툭하면 파업하기 때문이다.”는 고전 유머가 있다. 캄보디아인이 짓고 북한 사람이 간수인 감옥이야말로 가장 탈옥하기 쉬운 감옥이 아닐까. 감옥은 언제나 보수 중일 터이고 부패지수 세계최고인 북한의 간수를 매수하기란 식은 죽 먹기일 듯싶어서다. 요즘은 어느 나라 건설 현장이나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인력을 선호하다보니 공사 완성도가 떨어지는 추세라고 하지만, 캄보디아 건설 근로자만큼 시공 오차에 대한 인심이 넉넉하기는 힘들 것이다.

높은 탑을 쌓아 하늘에까지 이르려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벌로 다른 언어사용의 저주가 내려 영원히 준공식을 못 치르게 된 바벨탑 얘기도 있듯이, 해외건설현장에는 공정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더구나 전통가옥 외에 접해본 적이 없는 캄보디아 노무자에게 현대식 건물에 대해 설명하기란, 한 번도 여름이라는 계절에서 벗어나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눈 내리는 겨울의 정취를 설명하는 일만큼이나 곤혹스럽다. 자기분야만 힘든 양 떠들어대는 것만큼 꼴불견도 없지만 엄살을 좀 더 떨자면, 전용연장은커녕 회사에서 마련해준 망치마저도 머리는 팔아먹고 자루만 꿰차고 일터로 나오는 인사들이 캄보디아 목수들이다.

프놈펜의 신축 프로젝트를 얼마 전에 겨우겨우 마무리했다. 아무리 소박한 건축물이라도 그것은 비문서화 된 하나의 기록이다. 당대에 통용된 재료와 공법은 물론, 그 공사에 참여했던 노무자, 기술자, 건축주, 건축가의 땀과 혼의 일지인 셈이다. 우리네 삶이 만남 기다림 그리움 그리고 이별의 연속이라면 그 대부분은 건축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라, 추억의 기록 또한 계속 이어지리라. 조그만 것이라도 창작 해 세상에 내 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자기 손에서 떠나보내는 심정은 아쉬움과 부끄러움으로 가득하다.

“세상에는 믿을 만한 친구가 셋 있다. 늙은 아내, 늙은 개, 그리고 현금”이라는 말을 벤저민 프랭클린이 했던가. 주인장의 취향이 물씬 묻어나는 고풍스런 건축물만큼 잔잔한 경탄을 자아내는 것도 없으니, 오래 머무른 고옥(古屋) 또한 늙은 아내와 다를 바 없으리라. 눈을 감고도 소통의 길목이 어딘지 어떤 곳에 힐링이 필요한지 알 수 있으니. 그래서인지 건축쟁이들은 건물을 완공하여 건축주에게 넘길 때 “시집보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자신보다 세상에 오래 남을 건축물이, 사돈댁에 보내려니 왜 그렇게 못난 구석만 눈에 띄는지, 시집가서 잘 살까 못 살까 평생 마음 졸이게 하는 애물단지 여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새로운 터전에서 사랑 듬뿍 받고 곱게 늙어갔으면 좋겠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