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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아재의 펌프이야기] 내 계획에 상류층은 없었는데

“선교사가 나이 먹고 정신 못 차리고 오락실이나 다닌다.”
나도 귀가 있는지라 남들이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대충 들을 만큼은 들었다. 사실 남들 탓할 것도 없는 게, 우리 부모님조차 30대 중후반이나 된 아들이 갑자기 오락실에 살다시피 하니 걱정이 태산이셨다. (지금은 내 사역을 가장 응원해 주시지만 말이다.)
남들의 시선이야 어찌 됐든, 펌프를 뛰어보니 운동이 됐고, 살이 빠졌으며, 몸도 건강해졌다. 그 뽕맛(!)과 몰입감에 빠져 한때는 일주일에 6일을 오락실로 출근도장을 찍기도 했다. (지금은 주 4~5일 정도만 나가니 그때에 비하면 아주 조신하게(?) 즐기는 셈이다.)
그렇게 오락실에서 만난 현지 아이들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함께 땀 흘리고, 편하게 어울려 놀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으잉? 걔들 중에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애가 하나도 없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무리에서 ‘가장 형편이 안 좋다’는 애조차 한 달에 100달러짜리 영어학원을 수 년째 다니고 있었고(캄보디아에서 한 달 100달러라는 돈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바로 감이 올 것이다.), 펌프뛰는 애들 중에 국제학교 안 나온 애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더 흥미로운 건 그 다음이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유저들이 계속 유입되었는데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새로 들어온 녀석들도 하나같이 전문적인 어휘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구사하는 실력자들이었다. (내가 고급 어휘를 몇 번 못 알아듣고 어리버리하고 있으니, 고맙게도(?) 그다음부터는 나를 배려해서 쉬운 단어만 골라 써주긴 하더라.) 심지어 그중에는 3개 국어, 4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몬스터급 능력자들도 여럿 섞여 있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이라는 국적 빼고 나면, 나는 그 아이들 앞에 명함도 못 내밀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다. 우리 펌프 팀원들 중 상당수가 미국, 호주, 영국, 일본, 캐나다 등으로 유학을 갔거나 아예 이민을 간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다.
캄보디아 사람이 미국 시민권을 따는 건 ‘하늘에 별 달기’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어려운 일인데, 미국 시민권자인 팀원도 있었다. 굳이 파헤쳐 알아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소문을 들어보니, 그 녀석의 어머니는 캄보디아의 ‘바탐방’이라는 도시에서 알아주는 지주라고 했다. 그 녀석 못지않게 잘사는 애들이 그 작은 오락실 안에 수두룩하게 모여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스운 일이다. 나는 이 아이들을 ‘전략적으로’ 만난 게 아니었다. 그저 재밌게 운동하려고 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주위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가진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내 계획에는 애초에 ‘상류층’이라는 항목 자체가 없었다.
나는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 내가 목사이자 선교사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숨긴 적이 없다. 늦게 합류하여 내 신분(!)에 대해 몰랐다 한들, 매년 펌프 대회가 끝난 뒤 열리는 기부 행사를 함께 다니며 기독교 단체에 함께 방문했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선교사라는 걸 숨기지 않는 것과, 그들에게 신앙을 강요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억지로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사실 이런 태도를 갖게 된 데에는 과거 호주에서 2년간 워킹홀리데이 청년들을 만나며 겪고 보았던 시행착오들이 큰 약이 되었다. 당장 관계가 쌓이지도 않았는데 무턱대고 “교회 무조건 나와라”,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틀린 말은 아닌데)며 복음부터 다짜고짜 밀어붙이다가, 관계마저 와르르 틀어져 버리는 반면교사들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삶으로 예수 믿는 사람의 온기를 먼저 보여주지 않는 복음 제시는 때로는 독이 되기도 했다.
참 감사하게도, 내 펌프 친구들은 내가 목사, 선교사라는 직함에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어쩌면 내가 외국인이었기에 조금 더 관대하게 바라봐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나를 아무런 편견 없이 그저 ‘함께 펌프를 즐기는 형, 아저씨’로 대해주었다.
그러던 2021년 4월,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캄보디아에도 본격적인 락다운이 시작되었다. 생필품을 사러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빡센 시절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집 밖으로 아예 나올 수 없는 팀원들이 생겨났고, 그 와중에 차가 있어 마트라도 다녀올 수 있었던 나는 발 벗고 나서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팀원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돌렸다.
“나 마트 가는데, 필요한 식료품이나 생필품 있으면 다 말해. 사다 줄게.”
나는 장을 봐서 그들이 사는 집 근처까지 부지런히 배달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일본인 팀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너 이거 어디서 돈 따로 받는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나는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크리스천이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걸 가장 기뻐하시거든. 나는 그저 내가 믿는 대로 실천하는 것뿐이야.”
그 친구는 나의 말과 행동에 깊은 고마움을 표했다. 락다운이 해제된 후, 나는 그 친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교회에 나가볼 것을 권했다.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가 일본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그 뒤의 소식을 더 이상 들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그 친구가 생각난다. 그가 일본에 돌아가서도 어느 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예수님에 대해 더 알게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꼭 거창한 말로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 애쓴다. 내 시간과 물질을 써가며 손해를 감수하는 것, 내 것을 털어 남을 도와주는 것, 바라는 것 없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그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당신의 목숨을 쏟아부으신 예수님의 사랑 역시, 우리가 받아 마땅한 ‘당연한 일’은 아니지 않았는가? 그 비당연한 사랑을 입은 자로서, 나 역시 그저 당연하지 않은 사랑을 세상에 조금씩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다.
돌아보니 처음 오락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그 안에 누가 있을지 전혀 알지 못했다. 부모님도, 뒤에서 수군거리던 사람들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 그 발판 위에서 이런 아이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짠 계획표 어디에도 ‘상류층 자녀들에게 다가가기’ 같은 항목은 없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미 하나님은 나보다 먼저 그 자리에 계셨다. 내가 계산기를 두들겨본 적도 없지만, 주님은 이미 그곳에 주님의 사람들을 세워 놓으셨다.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선교는 내가 누군가를 ‘전략적으로’ 골라내는 일이 아니라, 그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성실하게 서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그 자리가 어디든지 말이다.
까짓거, 좀 더 손해 보자. 까짓거, 내가 먼저 손 내밀자. 심다 보면, 주님이 자라게 하시겠지.
글 이재호
사단법인 조이풀에듀앤호프 캄보디아 지부장
CPF Series(Cambodia Pump it Up Festival) Organiz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