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안 프리미어 리그를 이끄는 한국인, 구자현을 만나다

기사입력 : 2026년 04월 06일

[특별인터뷰] 시하누크빌 축구소년, 캄보디안 프리미어 리그 CEO가 되다

Peter Koo

“사람들이 고향을 묻으면 저는 늘 시하누크빌이라고 답합니다.”

Peter Koo, 우리나라 이름으로 구자현. 캄보디안 프리미어 리그(Cambodian Premier League)의 CEO이다.

Peter KOO CEO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두 살 때 선교사 부모님을 따라 캄보디아에 온 그는 캄보디아의 공기, 사람, 이 땅의 감정을 몸으로 익히며 자랐다.

그의 어린 시절을 모두 보낸 도시는 시하누크빌이다. 그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시하누크빌은 화려한 도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말 할 게 아무것도 없던 곳”이었다. 시하누크빌의 라이프 대학교를 창립한 구견회 선교사의 자녀인 그는 학교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돌고 친구들과 해 질 때까지 축구공을 차며 하루를 보냈다.

“친구를 사귀기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캠퍼스에 축구장이 생기고 나서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 축구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하루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가 생겼죠.”

그에게 축구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사람과 연결되는 소중한 연결고리였다. 캄보디아 친구들과 뛰놀며 크메르어를 자연스럽게 익혔고 그들의 감정, 문화, 삶의 결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는 캄보디아를 “가장 평화롭고 감사한 성장의 땅”으로 기억한다.

 

선수의 꿈에서 스포츠맨의 길로
어린 시절 그 역시 축구선수를 꿈꿨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현실을 읽었다. 시하누크빌에는 프로팀도, 수준 높은 지도 시스템도 없었다. 좋은 아카데미와 체계적인 훈련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한국 선수들의 길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이미 깨달았다.

대신 그는 더 넓은 축구의 세계를 바라봤다.

“선수는 어렵더라도 축구 안에서 평생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목표는 분명해졌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더 정확히는 축구 산업 안에서 사람과 시스템을 움직이는 리더가 되는 것이었다.

미국 Liberty University 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대학 시절 그는 단 한 번도 진로를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이미 “배우고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와 스포츠 육성 시스템을 세우겠다”는 비전을 세웠고 대학의 운영 구조와 선수 육성 시스템을 눈여겨보며 그대로 자신의 미래 설계도에 담았다.

다시 캄보디아로, Life FC의 기적을 만들다
졸업 후 미국에서 MBA와 프로 미식축구팀 실무 경험까지 쌓으며 커리어의 폭을 넓혔지만 결국 그의 시선은 다시 캄보디아로 향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은 귀환이었다. 미국에서 커리어를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비자 문제와 삶의 방향 앞에서 고민하던 순간 캄보디아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캄보디아에서 축구 사역과 프로팀 프로젝트를 시작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당시 “마음이 무거운 상태로 돌아왔다”고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학생 선수들과 다시 시간을 보내며 오래전 품었던 비전이 다시 살아났다.

라이프-축구단은-올해-3월-31일-껀달-주-경찰-아카데미-스타디움에서-열린-내무부-축구팀MIF과의-경기를-끝으로-2부-리그의-우승을-차지했다._WS-1024x682▲ 라이프 FC는 창단 연도인 2024년 3월 31일 껀달 주 경찰 아카데미 스타디움에 열린 내무부 축구팀(MIF)과의 경기를 끝으로 2부 리그의 우승을 차지해 1년만에 1부로 승격하며 CPL사상 유례없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렇게 2022년,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Life FC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창단 초기 목표는 3년 안에 1부 리그 승격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움직였다.

2부 리그 초반 6경기 최하위라는 처참한 성적이었지만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들을 한자리에 모아 팀워크를 다시 세웠다. 매주 팀 빌딩을 하고 선수들의 대학 진학을 지원하며 “축구선수 이전에 성장하는 사람과 팀”이라는 가치를 심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 1위 팀과 동률 상황에서 후반 75분 터진 결승골. 기적 같은 승리로 Life FC는 창단 첫 시즌 만에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냈다. 창단 1년만에 2부에서 1부 리그로 승격. 동남아 축구 무대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드라마같은 스토리였다.

“그 시즌은 정말 말 그대로 크레이지 스토리였습니다.”

그는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지만 그 안에는 한 팀의 성적을 넘어 비전과 교육, 공동체가 만들어낸 성장 모델이 담겨 있었다.

 

29세, 캄보디아 프리미어 리그의 최전선에 서다
Life FC의 성공 이후 또 한 번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CPL이 리그 구조 개편을 진행하면서 각 구단 대표들이 보드 멤버로 참여하게 됐고 그 역시 Life FC 대표로 자연스럽게 리그 개혁 논의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새 CEO를 찾는 일을 돕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드 멤버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너도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당시 그의 나이는 29세. 리그의 CEO라는 자리는 보통 수십 년 경력의 축구 행정 전문가들이 맡는 자리였다.

“갑작스런 제안에 솔직히 겁이 났습니다. 클럽, 보드, 이해관계자, 캄보디아 축구 전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가 컸죠. 그런데 오히려 무서웠기 때문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의 도전정신은 결국 CPL CEO라는 자리로 이어졌다. 사실상 리그의 대표 역할을 맡아 구단 관계, 클럽 라이선싱, 축구 발전 전략, 미디어·마케팅, 재정, 경쟁 운영, 대외 이해관계자 협력까지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캄보디아 축구의 미래는 팬 문화와 시스템입니다”

photo_2026-04-01_08-26-22▲ 구자현(Peter Koo) CPL CEO

그가 바라보는 CPL의 현재는 “아직 기초 체계를 더 단단히 세워야 하는 성장기 리그”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과제는 팬 문화다. 결과에 따라 감정 기복이 큰 팬 문화를 보다 지속 가능한 서포터 문화로 확장하고 가족 단위로 경기장을 찾는 경험을 만들어야 리그의 스폰서십과 상업 구조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그는 유소년 보호 정책, 클럽 라이선싱, 기술위원회 운영, AI와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리그 효율화 등 축구 산업의 시스템 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캄보디아 축구가 동남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필수적인 작업이다.

 

한국 선수들이 높이는 캄보디아 리그의 위상
구자현 CEO는 최근 캄보디아 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의 존재 역시 리그 성장의 중요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특히 유럽 무대 경험을 가진 수준 높은 한국 선수들이 캄보디아를 선택한 순간 리그 내부에서도 “캄보디아 축구가 이만큼 성장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뿐 아니라 프로의식, 훈련 문화, 팀 내 경쟁 구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한국 선수들의 진출은 캄보디아 리그의 수준과 가능성을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 자연스럽게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축구는 이미 아시아에서 높은 수준의 시스템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더 많은 한국 선수와 지도자들이 캄보디아 리그에 관심을 갖고 함께해 준다면 리그의 수준과 브랜드 가치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캄보디아 축구를 꿈꾸다
인터뷰 말미, 구자현 CEO는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한인사회에 따뜻한 메시지를 전했다.
“한인 커뮤니티가 CPL과 선수들을 함께 응원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며 “캄보디아 프로축구 연맹 역시 축구를 통해 이 사회에 긍정적인 임팩트를 만들고 싶습니다”

특히 그는 팬의 관심이 곧 리그의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캄보디아에 계신 한인 커뮤니티 분들이 여러 분야에서 많은 희생과 좋은 일들을 하고 계신 만큼 축구 분야에서도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 그는 한인사회의 관심이 선수들에게도 큰 의미가 된다고 덧붙였다.

“캄보디아 선수들에게 외국인, 특히 한인 사회가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로이자 동기부여가 됩니다. 리그와 각 클럽 모두 앞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 다양한 스폰서십과 파트너십을 찾고 있습니다. 작은 후원이든 큰 협력이든 모두 캄보디아 축구 발전에 큰 힘이 됩니다.”

시하누크빌의 작은 축구장에서 축구와 사람을 사랑하던 한 소년은 이제 캄보디아 프로축구의 미래를 설계하는 리더가 됐다. 구자현 CEO의 방향은 분명하다. 축구를 통해 사람을 세우고 캄보디아의 내일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정인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