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이 보는 세상] 작별 수행

기사입력 : 2016년 0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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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입에 첫새벽 진한 어둠 프놈펜발 항공기 오르며 “캄보디아 안녕!” 살포시 속삭인다. 내게 캄보디아는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입꼬리 휘는 행복 미소를 3년 한결같이 선물한 나라이다. 그래서 진정 안녕하기를 마음 담아 기원한다.
10여 년 전의 방송 프로그램 ‘유재석과 감개무량’을 보다가 배경 음악에 ‘필이 꽂힌다’. 어떤이의 회고 의하면 88 올림픽 전 통금이 있던 시절 자정 무렵이면 술집, 지하철 역 등 곳곳에서 울리던 음악이란다. 딕 패밀리란 그룹의 ‘또 만나요’라는 노래이다.
그러니까 분명히 ‘헤어짐’을 주제로 하는 노래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방송을 시작하는 시그널뮤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했던 것이다. 밝은 마음으로 헤어질 수도 있음을 알게 해주는 귀하고 반가운 음악이다.

‘그리운 옛날’의 뜻으로 한국에선 ‘석별’로도 알려진 ‘올드랭사인’을 들어보셨는가. 1900년을 전후하여 애국가의 곡조로도 사용이 되었으니 모르는 분이 별로 없으리라. 서글픈 별리의 감정을 담은 멜로디에 국가(國歌)를 얹어 불러야 했던 조선의 정황 떠올라 가슴 아릿하다.
그러자니 전통 민요 ‘아리랑’이나 고려 가요 ‘가시리’를 읊조려보게 된다. 헤어짐을 다룬 노래들 중에서 이토록 아리아리한 것들이 다른 나라에도 여럿 있을까 싶다. 그러한 전통은 드디어 민족시인 소월에게 이어져 ‘진달래꽃’ 절정으로 꽃피어 있다.
‘아리랑’과 ‘가시리’와 ‘진달래꽃’이 작별을 다룬 세계 챔피언급 작품들이라는 점에 동의하시는가. 그렇다면 한국인은 헤어짐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서도 ‘타짜’인 거다. 일반적으로 애절한 정서와 곡조는 감상자의 심장을 쥐어짜는 비극의 통고(痛苦)를 간접 경험하게 한다.

모든 인간들은 거의 예외 없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런 상식에서 본다면 인류가 그토록 많은 비극 작품을 만들어내고 감상하는 이유는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에게는 그럴 만한 동기가 있지 않겠는가.
그리스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론으로 이를 설명한다. 몸 안 불순물을 ‘배설’한다는 뜻이거나, 종교적 차원에서는 ‘정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 비극을 보며 비슷한 감정들이 배설(排泄)되고 긴장과 불안이 해소되어 마음이 정화(淨化)된다는 게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지구촌 최고 수준의 석별(惜別) 작품들을 아쉽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물론 엄청난 외침(外侵)의 비극적 결과물임을 먼저 통한하는 게 자연스럽다. 반면 카타르시스론에 의하자면 트라우마의 슬기로운 극복이라 자긍(自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최근의 비극 역사는 일제에게 나라를 앗긴 일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 겪은 일이면서 강도(强度)면에서도 유례가 없는 비극적 사건이었다. ‘님’이 침묵(沈黙)한다는 ‘함축 언어’ 속에 뼈아프고 적확하게 노정(露呈)하였으되 우리 민족에겐 당연히 포기란 없었다.
너무나 강렬한 고통이었기에 시인은 소리 ‘없음’으로 국권 상실을 상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읍니다’라 한 바가 스님이기도 했던 만해의 뛰어난 점이다. 영혼 상처 입었으되 기필코 나라를 되찾겠다는 신념 놀랍지 않은가!
재회 의지 굳건함에도 나라가 없으니 비장 있을지언정 낭만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광복 후 70년간의 ‘얼토당토않은 부분들과 헤어지기’ 결심하면서 비장감은 이만 덜어내자. 바로 오늘 71주년 광복절이 감격이려면 ‘새로운 세상’의 낭만 구현 다짐하며 지난 70년과 헤어지자.

캄보디아와 대한민국은 현대 인류사 최악의 내전 비극을 겪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풍전등화의 겁박(劫迫)을 셀 수 없이 경험하였다는 점도 동일하다. 지구마을 인간들이 생불로 추앙했던 위대한 스님들을 배출한 점도 같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 중 캄보디아인들 숫자가 수년간 수위(首位)임을 전해 듣는다. 그것은 서로의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간 제 미흡한 글을 사랑해주신 양국의 독자들에게 그 점 일깨우며 새로운 세상을 인도할 비법(秘法)의 작별 수행(修行)을 추천한다.
먼저 만해 스님의 비장함을 잊지 않으면서도 이제는 낭만 또한 노래하시라. ‘아리랑’에서 ‘가시리’를 거쳐 ‘진달래꽃’으로 이어진 정서를 보듬으면서도 웃음 역시 전하시라. ‘헤어지는 마음이야 아쉬웁지만 웃으면서 헤어져요’를 내일 향해 신나게 외치시라./한유일(교사, shiningda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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