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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육의 사각지대에서 20년 아이들의 ‘아빠 나라’를 지켜온 사이공한글학교 김규 교장 인터뷰
사재 털어 한-베 다문화 자녀 무료교육 지속해…“누군가는 해야 다음 세대가 혜택을 받는다”
베트남 호찌민에는 20년째 토요일 아침마다 문을 여는 한 학교가 있다. 평일에는 베트남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주말이면 한글을 배우기 위해 모이는 곳,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 ‘아빠 나라’를 처음 상상하고 배워가는 곳, 바로 사이공한글학교다.
2006년 문을 연 사이공한글학교는 한-베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비영리 무료학교다. 현재 약 70명의 학생들이 등록해 수업을 듣고 있으며 전교생은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베 다문화가정 자녀들이다.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개교 이후 지금까지 100% 무료교육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김규 교장이 있다. 김 교장은 지난 20년 동안 사재를 보태며 학교를 지켜왔다. 재정 부족, 교사 수급의 어려움, 한글학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한계 속에서도 그는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각지대의 아이들을 위해 시작된 학교
사이공한글학교는 한국어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한-베 다문화 자녀들이 자신의 뿌리를 알고 정체성을 세워가는 공간이다.
김 교장은 “사이공한글학교는 처음부터 한-베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엄마 나라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아빠 나라의 말과 문화를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사이공한글학교는 학년별이 아닌 한국어 수준별 수업을 운영한다. 학생들은 토요일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 학교에 나와 정부에서 지원하는 한글학교 한국어, 세종학당 한국어, 베트남 맞춤 한국어 등을 배운다. 평일에는 1년 전부터 세종학당과 협업해 결혼이주자를 위한 TOPIK 반도 운영하고 있다.
수업은 한국어 교육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통문화, 한국문화 체험, 충효 교육, 아빠 나라 방문 등 한국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소양과 정체성 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김 교장은 “언어는 교육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교육의 수단”이라며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와 정체성을 함께 배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30년 전 주재원으로 시작된 베트남과의 인연
김규 교장의 베트남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종합상사 주재원으로 베트남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이후 한인잡지 ‘굿모닝베트남’ 발행인, 제13·14대 호찌민 한인회장, 국립 베트남대학교 호치민 인문사회대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한국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유해폐기물·독극물 처리 분야의 환경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 베트남 한인사회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온 인물이다. 한인회의 중심에 서서 교민들의 어려움을 대변했고 한인사회가 필요로 하는 문제 앞에서는 줄곧 한인의 편에 서왔다. 사이공한글학교 역시 그런 현장 경험 속에서 시작됐다.
김 교장은 “처음부터 무료로 한 이유는 분명했다. 이 아이들이 무료가 아니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반 한국어 교육기관에 갈 수 있는 형편의 아이들이 아니었고 가정 안에서도 한국어를 배울 환경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이공한글학교는 ‘돈이 없어도 배울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했다.
“저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선택되어졌지요”
과거 타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 교장은 한글학교 교장을 왜 선택했냐는 질문에 “저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선택되어졌지요. 마치 의무처럼 말입니다”라고 답했다.
그에게 교육은 당장의 성과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교육은 백년을 계획하는 일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어린이들에게도 미래는 있습니다. 그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꼭 내 자녀가 아니어도 말입니다.”
사이공한글학교를 20년간 무료로 운영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정 문제는 늘 가장 큰 부담이었다.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의 지원을 받는 재외교육기관이지만 학교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는 부족했다. 교사 수급도 쉽지 않았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고 지속적으로 수업을 이어갈 교사를 찾는 일은 매번 과제였다.
더 큰 어려움은 인식의 문제였다. 김 교장은 “한국국제학교에는 많은 관심이 쏠리지만 한글학교는 자생해 왔다는 이유로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지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왜 무료로 하느냐” “통폐합하면 되지 않느냐”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료학교를 20년 했으면 할 만큼 했다는 솔직한 생각도 있다”면서도 “이 일은 사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누군가는 계속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빠 나라 ‘한국’을 다녀온 뒤 달라지는 아이들
사이공한글학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아빠 나라 방문’이다.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베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해 매년 약 열흘간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국에 다녀온 아이들이 정말 180도 달라집니다.” 김 교장은 아이들이 한국을 다녀온 뒤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이들은 한국의 거리, 음식, 학교, 사람들을 직접 경험하며 ‘아빠 나라’를 눈으로 확인한다. 책과 수업으로만 배웠던 한국어가 실제 사람들과 이어지는 언어가 되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사이공한글학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인교대 졸업반과의 겨울방학 윈터캠프 등 외부 기관과 연계한 교육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체험과 교류를 통해 아이들이 한국어를 교실 안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글학교는 아이들의 꿈을 지키는 곳”
김 교장은 사이공한글학교를 “꿈의 산실”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자신의 꿈이 아니라 아이들이 대신 꾸어갈 꿈을 믿는다는 의미다.
그는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나누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배우려는 마음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이며 어른들의 의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자라는 한-베 다문화 자녀들은 언어와 문화 면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두 나라를 잇는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김 교장은 “우리 아이들이 베트남 사회나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정체성 없이 타인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돕고 싶다”며 “아이들이 이 사회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서 설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것이 사이공한글학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는 2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무료교육을 계속해온 시간은 헌신이자 희생이었다. 그러나 김 교장은 그 시간을 개인의 공로로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노력해야 그 혜택이 다음 세대에 돌아갑니다.” 김규 교장이 20년째 사이공한글학교를 지켜온 이유다./정인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