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82화 깜뽕짬주 “남자산, 여자산” 이야기

기사입력 : 2022년 02월 04일

수정됨_82-01▲ 남자산(L)과 여자산(R)의 모습

“프놈뿌러(남자산)”와 “프놈스레이(여자산)”는 깜뽕짬주 시내에서 약 7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산이다. 두 개의 산봉우리는 7번국도의 116번 도로표지판에서 북동쪽으로 쳐다보면 1km 지점에서 보이는데, 상대적으로 낮은 쪽이 “남자산”, 높은 쪽이 “여자산”이다. 산 정상은 아름다운 사원과 재기발랄하고 왁작지껄한 원숭이들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 산을 연결하는 산자락은 고대 건축물과 힌두교 및 불교 석상이 어우러진 공원을 산책하며 시원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또한 이 산에 얽힌 전설은 고대 모계사회에서 비롯됐을 캄보디아의 전통적 결혼풍습과 캄보디아 여성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남자산, 여자산” 이야기를 살펴보면, 캄보디아의 고대에 ‘스레이 아윳티야’라는 여왕이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이때 남성들은 그녀가 힘이 있는 여왕이기 때문에 감히 사랑할 수 없었고 두려워할 뿐이었다. 그래서 여왕이 결혼하기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신랑감을 찾아 직접 프러포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례에 따라 왕국의 모든 여성들도 결혼을 하려면 먼저 남성들에게 구혼해야 했다. 그때부터 매력을 끌지 못하는 여성들은 남성과 결혼하기 어려웠고 프러포즈를 거절당할 때는 모욕적이기까지 했다. 불만스러웠던 여성들은 다음 왕대부터 이러한 관례를 바꾸기 위해 남성들에게 시합을 제안했다.

여성들이 제안한 시합의 방법은 남성팀과 여성팀으로 나뉘어서 각각 해질녘부터 샛별(새벽별 혹은 금성)이 뜨기 전까지 흙을 산처럼 높이 쌓으면 된다. 그리고 가장 높이 쌓은 팀이 승리자가 되어 결혼을 위한 프러포즈를 받는 것으로 정했다. 당연히 남성들은 힘이 훨씬 세고 더 많은 흙을 옮길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해서 시합을 수락했다. 양측은 동일한 인원수로 각자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여 흙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밤이 깊었고 흙을 옮기던 여성들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북동쪽 하늘에 작은 등불을 밝혀 올림으로써 상대측에게 샛별로 오해하도록 속임수를 쓰는 전략이었다.

이를 눈치 못 챘던 남성들은 결국 등불을 샛별로 착각하고는 작업을 모두 멈추고 잠들고 말았다. 반면에 여성들은 진짜 샛별이 정말로 떠오를 때까지 흙을 계속 쌓아 올렸다. 새벽에 수탉이 울어서 남성들이 잠을 깼을 때는 이미 하늘에 샛별이 떠 있었고 여성들이 쌓은 산이 자신들의 산보다 더 높아져 있었다. 여성들에게 속아서 산이 높지 않았던 남성들은 창피했고 그녀들의 승리를 인정해야 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높이 쌓은 산은 오늘날 “프놈스레이(여자산)”, 낮은 산은 “프놈뿌러(남자산)”로 불리게 됐다.

“프놈뿌러”는 봉우리가 대략 30m 높이로 뾰족하지 않으며, 정상까지는 길포장이 좋아서 승용차로도 이동할 수 있다. 정상에서는 깜뽕짬주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뿐만 아니라 화이트 톤이 눈부신 ‘왓 쏘반나끼리 라따낙 프놈뿌러(Wat Sovankiri Ratanak Phnom Bros)’ 사원 단지를 방문할 수 있다. 주요 사원은 씨엠립의 반띠스레이 사원 스타일로 지어진 5개의 봉우리가 있는 사원이다. 그밖에 2개의 봉우리가 있는 사원은 사회주의 정권기(1955-1970) 혹은 노로돔 시하누크 왕자 집권기에 지어졌으며, 현재도 짓고 있는 사원이 있다고 한다.

“프놈스레이”는 봉우리가 대략 110m 높이로 뾰족하며 정상까지 상당히 가파른 30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정상에는 폐허가 된 사원의 재건을 위해서 기금을 모으는 비구니가 상주한다. 프놈뿌러에서 프놈스레이로 가기 전에 맞닥뜨리는 널찍한 공원은 크메르루즈 정권기(1975-1979)에 이곳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공간으로 마련된 듯하다. 부처 형상의 초대형 입상과 좌상 및 와불이 수풀 속에서 거대하게 조성돼 있고, 힌두교 신화를 본뜬 다양한 조각상도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80-이영심

글 이영심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