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74화 캄보디아 민족주의 소설, “미어리어두엉쩟(나의 아름다운 꽃)”

기사입력 : 2021년 12월 10일

1972년에 발표된 소설 “미어리어두엉쩟(나의 아름다운 꽃)”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의 상황에서 프랑스제국의 식민지였던 캄보디아가 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1940년12월 프랑스-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의 참전으로 바탐방, 시소폰, 씨엠립(시엠립 타운 제외) 및 쁘레아위히어가 태국으로 넘겨지기도 했다. “미어리어두엉쩟”의 남자 주인공은 캄보디아인이고 여자 주인공은 태국인으로서 이러한 역사적인 전개를 함께하며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작가는 “프까쓰러뽀안(시든 꽃)”으로 잘 알려진 누핫(Nou Hach: 1916-1975)인데,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개인의 행복보다는 애국의 정신을 고취하고자 한다.

1939년에 ‘띠키웟’은 씨소왓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몽상가적이고 태국음악에 심취한 젊은이였다. 방학이 돼서 띠키웟은 바탐방의 부모님 집에 가고 있었고, 기차에서 처음 만난 아름다운 태국인 여자 ‘짠모니’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짠모니의 아버지는 태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에 연루되어 캄보디아로 몸을 피해서 살고 있었다. 띠키웟은 기차역에서 그녀를 마중나온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후 짠모니와는 기약없이 헤어졌다.

수정됨_74-03▲ 꿀렌산의 거대한 와불상의 모습, “미어리어두엉쩟(나의 아름다운 꽃)”의 두 주인공은 이곳에서 사랑의 지속을 염원했다.

어느날 띠키웟은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그녀와 아버지를 다시 만났고 짠모니는 띠키웟을 집에 초대했었다. 그때부터 그는 짠모니의 집을 수시로 왕래했고 둘은 점점 가까워져서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띠키웟은 학업을 열심히 했고 방학이 되어서 친구인 ‘웨끼’의 가족과 짠모니 가족이 함께 씨엠립에서 휴가를 보냈다. 꿀렌산을 여행할 때 띠키웟과 짠모니는 거대한 와불상 앞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맺고 영원히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띠키웟은 열심히 학업을 정진하여 좋은 성적을 거뒀고 짠모니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렇지만 짠모니는 어머니가 위중하고 아버지도 반역 혐의를 벗게 됨에 따라 고향인 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헤어져야 했고 캄보디아의 상황도 혼란스러워졌다. 학교는 폐쇄됐고 선생들은 모두 전장에 나가야 됐다. 국내외 사정이 어렵게 돌아감에 따라 띠키웟도 공부를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뽀삿주의 행정직원이 됐다.

띠키웟은 뽀삿주에서 근무하는 동안 끔찍한 부패행위를 목도했다. 또한 친구인 웨끼로부터 짠모니와 아버지가 캄보디아에 파견된 태국의 스파이라고 듣게 되자 띠키웟은 강하게 분노해서 바로 군대에 자원했다. 전투가 발발하여 캄보디아의 군대가 부상을 크게 입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심각하게 부상을 입은 띠키웟은 간호사로 있던 짠모니가 수혈한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띠키웟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냉담하고 거칠게 대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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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돌아온 띠키웟은 뿌억군을 책임지는 군수가 된다. 당시에 바탐방, 뽀삿의 일부와 껌뽕톰주는 태국령이어서 캄보디아인들이 지은 농산물 반출이 용이하도록 띠키웟은 태국인 관리들과 원만하게 지내야 했다. 어느 날은 앙코르 사원을 관광하러 캄보디아에 온 태국인 관리의 가족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어떤 사원에서 짠모니와 아버지를 우연히 봐서 깜짝 놀랐지만 셋은 모르는 척했다. 그런데 지난날 띠키웟은 친구인 웨끼가 그들에 대해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오해했던 것이라서 짠모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호수에 이르러 식사 후에 수영을 하던 중에 짠모니가 말을 걸어왔고, 띠끼웟은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둘을 새롭게 연인이 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띠끼웟은 앙코르 사원의 부처상 앞에서 맹세하기를, 태국이 가져간 영토를 캄보디아에 돌려주면 자신은 태국인과 친구가 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마침내 끝났고 태국과 프랑스가 협정을 맺음으로써 캄보디아는 영토를 수복했다. 이에 따라 캄보디아인 관리의 통제하에 국가는 점점 발전했고, 띠끼웟과 짠모니의 사랑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80-이영심

글 이영심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