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이 보는 세상] 4.13

기사입력 : 2016년 0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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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캄보디아 새해맞이 명절인 쫄츠남 사흘 연휴의 첫날은 13일이었다. 해마다 양력 4월의 13일 무렵 새해 연휴가 시작되니 12일은 그 전야라 불러야 할까. 전야일 아침, 이따금 찾곤 하는 왕립대학 교정은 휑뎅그렁하니 그렇게 넓어보일 수가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 명절 되어도 감회 별다르지 않은 축이었다. 북녘이 고향이라 갈 수 없는 실향민인 것도 아니고 남녘 중부에 자리 잡은 부모님 고향에 대한 애틋함이 강한 것도 아니어서였다. 그러던 내가 왈칵 그리움에 하마터면 눈물이라도 쏟을 뻔하였다.
폭풍 직전 같은 조용함 가득한 캠퍼스에서 나는 왜 감상(感傷)에 젖었던 것일까. 스스로도 영문을 모르는 채 서성이며 일주일 쉰다고 알리는 카페의 안내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법이 정하기는 사흘이지만 아직도 길게 즐기던 옛 습관 따라 한 주 정도는 쉬는 추세인데 그게 우울의 원인인가. 가닥 닿지 않는 총선 정국 걱정 때문이라 한다면 그 해명이 너무 우스울까. 기왕 기나라 사람의 군걱정에 빠지기로 했다면 역사 속 이날의 흔적이나 더듬어 볼까나.

5공화국 치하이던 1987년의 이날은 ‘호헌조치’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새겨져 있다. 도덕성과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에 비민주성마저 짙어지며 야당과 재야의 직선제 개헌 요구가 심화되던 시기였다. 거세지는 민주화 요구에 직면한 정권은 특별담화를 발표하게 된다.
그 골자(骨子)는 ‘평화적인 정부이양과 서울 올림픽이라는 국가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논의를 지양한다’는 것이었다. 곧 대통령 간선제 방식을 바꾸지 않겠다는 도발이었다. 국민들의 저항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정부는 협박으로 대처했다.
정부의 위협에도 시위는 전국 규모로 확대되고 한국인 특유의 성난 분위기는 식지 않았다. 정권은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뜻을 접고 나중에 다음 대통령이 된 당시 집권당 대표가 개헌 수락을 선언한다. 그 날은 우리가 뜻 깊게 기억해야 할 6월 항쟁의 말미인 29일이었다.

상상력의 물길 따라 역사의 노를 16세기 말 임진년으로 저어가 보자. 음력이로되 4월 열사흗날 동래 앞바다에 왜선 700여척이 출몰하며 왜란은 발발했다. 그로부터 불과 보름여만에 왜군들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하며 조선 조정의 초라한 허약함을 드러나게 하였다.
그 시절 교통 상황을 고려하건대 보름만의 한양 탈취는 굉장한 속도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여행 아닌 전쟁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저항다운 저항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역사 수업 통해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 정도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당시 조선 최고 명장이던 신립은 지금도 험난한 천혜 요새인 새재를 버리고 어째서 무모한 배수진을 구사했을까.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계산하지 못했기에 그랬으리라는 지적은 자료를 읽어보면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전투 경험이 없던 오합지졸들을 지형 따라 산악에 배치한다 한들 그들이 거기 남아 작전을 수행했을까. 그것을 장담할 수 없었던 게 진정한 이유라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때의 조선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최선두에 서서 군을 지휘하기보다 최선의 속력으로 도성을 버린 왕, 류성룡과 이순신 같은 극소수 조정 중신에게만 넘치던 애국과 애민, 제가 속한 집단만의 안위를 도모한 다수의 위정자 무리들, 그 모든 걸 안고 삭이며 드디어 일어선 민초(民草)들의 우직한 힘!

나의 핏줄 어딘가에 어려 있을 그 힘은 기미년을 일깨운다. 삼월 초하루 탑골서 시작된 독립만세 소리는 곧이어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무자비한 총칼 앞에 엄청난 피해를 입으며 만세 파도(波濤)는 진압되었다. 그러나 진압되지 않은 백성들의 뜻은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 정부 수립으로 귀한 꽃을 피운다. 현재의 우리나라 헌법은 기미년의 엄숙한 뜻 오롯이 받들겠음을 만천하에 굳게 공표(公表)하고 있다.
임정 수립일은 우연이었을까 위의 날들처럼 금번 총선과 같은 날이었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삼월 비폭력 독립 운동은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거기 담긴 조선인들 용약(勇躍)의 정신은 얼마나 장한가.
패악(悖惡) 가까운 국민 무시 공천으로 얼룩진 씁쓸한 전망의 총선 전 날에 텅 빈 명문대 마당을 거닐며 내 마음에 요동친 서러움은 무엇이었을까. 최고 명절 즐기려 모두들 고향으로 떠나버린 고요 속에서 왜 폭풍의 전야를 떠올렸을까. 역사의 물굽이를 따라 흐르며 민초들 행동의 함의(含意)를 더듬어보았던 건 어째서였을까.

13일에 시작한 연휴 통해 캄보디아인들은 새로운 ‘츠남’[年]을 ‘쫄’[맞아들이기]하였다. 같은 13일 한국의 백성들은 알파고와도 같은 신의 한 수를 던져 절묘한 정치 지형도를 대한민국에 맞아들였다. 여기 시간 7시 고국의 9시 뉴스가 전하는 기적의 결과 앞에 한 잔 술로 흥분을 다독이자 이유를 알 수 없던 전야의 서러움이 비로소 서서히 씻겨갔다. 하지만 감격 도취는 금물인 게 대의(代議) 정치가 작동하는 한 우리의 삶은 선출된 정치인들에게 위임된다. 그리고 각 분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 영향력으로 또한 정치에 관여하여 오늘의 한국을 형성한다. 그 대표적 분야의 중추(中樞)가 언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근 한국 간판 언론 방송 한 곳에서 방영한 드라마 ‘태후’가 종영되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전 세계를 흥분시킨 한류 드라마의 힘은 예서도 감지된다. 피선(被選)되는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들이나 여론 평가 예민한 언론인들은 ‘대위 유시진’의 넘치는 인기가 부러울 수 있겠다. 그러나 ‘유시진 캐릭터에 입힌 열정과 배려’를 먼저 배우면 어떨까. 아니 그보다 주인공 아님에도 일원(一員) 위치에 헌신하는 ‘알파팀’ 성원들은 더욱 아름답지 않은가.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총알보다 강한 투표’는 어쩌면 주인공을 능가하는 일개 구성원의 헌신과 사랑을 닮았다.
하여 기연(奇緣)으로 이 글 읽을 수도 있을 정치인과 언론인들에게 이번 선거 결과 분석에서만큼은 ‘사심(私心) 이긴 공심(公心) 1분’을 권하고 싶다. 1592, 1919, 1987, 2016 거치며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친일자든 독립운동가든, ‘너’든 ‘나’든 한국인인 우리는 결국 서로를 보듬고 어울려 살아야 할 대한민국 동포의 연을 끊을 수 없다. 그러니 부디 잠깐의 충격 지나자마자 다시 또 앞가림 계산으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편가르기’ 버릇 돌아가지 말자. 미움조차 껴안아 ‘지혜롭게 공존하기’를 이룩한 슬기의 선거 결과를 학습하는 ‘1분 성찰(省察)’을 생활화하자. 자신[片]보다 사회[共存], 즉 좋은이는 물론 싫은이조차 인정하며 더불어 살아야 ‘조선천국’ 이뤄짐을 깨달아, 이번 선거만큼만 생각하고 움직이는 진정성을 체현(體現)하자. 언론도 정치도 선거 기적을 연출한 한국인의 소산(所産)일진대 ‘1분 지성(知性)’ 더한다면 달라질 수 없는 분야란 없음을 확신한다. 기적을 만들어준 갸륵한 민의(民意)를 겸허하고 진솔하게 받들어, 아전인수(我田引水) 드디어 넘어서 공업청정(共業淸淨) 기여할, ‘유시진 넘어선 알파팀의 일원’ 닮은 정치인과 언론인을 이번에야말로 신뢰 담아 기대한다./한유일(교사 , shiningda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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