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문화

기사입력 : 2014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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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는데 아이 하나가 담벼락에 낙서를 하고 있다… “영철이랑 미영이는 사랑한대요. 씨발놈아, 미영이는 내꺼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주뼛거리다 후다닥 달아난다…> 심보선 시인의 ‘도주로’라는 시의 일부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다. 담벼락도 그렇고 교실 책상, 화장실 벽, 사람 손이 닿는 곳이라면 으레 낙서가 있게 마련이다. 남자소변기에 “그대여, 당신은 지금 인류의 위대한 미래를 잡고 서 있도다.”, 여자변기에 “그대여, 당신은 지금 인류의 위대한 창고를 열어젖히고 있도다.”라고 동경대학 화장실에 씌어있었다는데, 낙서도 이쯤 되면 문학 반열에 들지 않겠는가. 캄보디아 공사현장이라고 낙서가 빠질 리 없다. 미장공사가 끝난 빈 벽이 인부들에겐 너른 캔버스로 보이는 모양이다. 막노동판이라 고학력이 드문 탓인지 글귀보다 그림이 대부분이다. 남녀 성행위를 조각으로 표현한 인도의 미투나(Mithuna)상을 연상케 하는 그 적나라함이라니…

2천 년 전의 이집트 피라미드에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듯이, 공공장소에서의 낙서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인터넷 문화에 대한 열광도 그런 낙서심리와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어느덧 전화로 수다 떠는 때보다 자판으로 소통 할 때가 더 많아진 SNS시대, 스마트폰류의 기기가 동네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파급력을 지닌 일종의 낙서판(?) 역할을 하는 듯싶어서다. 캄보디아 현장에서도 언제부턴가 그 가슴 철렁한 낙서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는데 스마트폰이 확산된 시점과 비슷하다. 페이스북 붐과 함께 자신의 사연과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행위로 낙서를 대신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문맹으로 사는지라 그들의 댓글 내용은 알 도리가 없으나 우리나라 인터넷 댓글을 보면 이게 사람의 민낯인가 싶어 끔찍스럽다. 특히 정치 분야 댓글. 끝없이 이어지는 욕설, 비방, 저주의 문구행렬, 그 옛날 시골터미널 공중변소에 앉아 치졸한 낙서를 대하던 때의 느낌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곳을 기점으로 범죄가 확산되는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 시작한 언어의 배설에 너도나도 질세라 싸지르게 되었으리라. 이렇듯 성마르기 쉬운 대중심리를 이용해 유리창이 깨지면 솔선해서 수선해야할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온라인 여론조작을 하기에 이르렀다. 민주시민의 공론장이 아니라 시정잡배와 협잡꾼의 아수라장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세계적인 권위지인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는 인터넷판 기사에 운영해오던 댓글제도를 없앴다고 한다. 악의적이고 선동적인 댓글이 너무 많아 오히려 건전한 여론 형성을 해친다는 판단에서다. 절제된 토론과 숙의의 장으로 이끌어 댓글의 순기능을 강화해나가는 방안도 있을 터이다. 우리의 댓글문화, 낯부끄러운 낙서수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 나순 (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