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饅頭)

기사입력 : 2014년 07월 30일

making-dumplings

대한민국 남자들은 제대한지 수년이 지나도록 “O병장!”하고 부르는 환청에 시달린다고 한다. 시집살이 졸업한지 한참이고 시모 작고하신지도 벌써 이태가 지났건만 뭉그적대고 싶은 날 아침이면 “오늘 만두나 해먹을까?”하시던 시어머님의 환청이 들리곤 한다. 해 떨어지기 전에 퇴근하면 집을 못 찾아갈 정도로 야근과 철야가 잦던 시절, 일요일 아침 비몽사몽간에 들리던 그 말씀은 전 가족을 향한 “만두의 날” 선포로써 간만의 달콤한 휴식에 대한 꿈을 산산이 부수어놓았으니.

만두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있을까. 생전에 만두를 즐겨하셨던 시아버님 입맛 물림인지, 시댁식구 모두 만두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 중 김치만두를 가장 좋아해서 수천 개의 만두를 취식하고야 한 해 겨울을 났다. “겉 먹자는 송편이요, 속 먹자는 만두란다.” 시모께서 말씀은 그리 하셨지만 만두피를 손 반죽으로 쫀득하게 치대야 직성이 풀리셨는지라 반죽하는 일은 노역에 가까웠다. 모든 재료를 잘게 다지고 뽀송하게 짜야하는 속 또한 마찬가지여서 만두전용 커터기와 탈수기까지 장만해 자동화를 시도해보았지만 김칫국물로 휘갑한 기계부품 뒷설거지가 더 끔찍해 포기하고 말았다. 만두공정에서 속과 피의 양이 맞아 떨어지는 법이 없다. 피가 남든가 속이 남든가. 시모께서는 그것을 구실로 “남은 속 상할라, 오늘 만두나 해먹자”고 채근하셨다.(생각해보니 일부러 그러신 듯)

만두의 역사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기원전 200년쯤 삼국지의 최고 책사인 제갈량이 남만을 물리치고 돌아가는 길에 물길이 사나운 “노수”를 건너야했는데, 49명의 인두(人頭)를 바치지 않으면 풍랑을 잡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더 이상의 인명손실을 원하지 않았던 제갈량이 궁리 끝에, 말고기에 밀가루 피를 덧씌워 사람머리형상의 만두를 빚어 제사를 지내고 무사히 강을 건넌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만두(饅頭)의 두頭는 사람머리를 의미하고 만饅은 기만하다는 만瞞에서 음을 따왔다고 하니, 만두는 귀신을 속이는 음식인 셈이다.

귀신은커녕 자신도 어쩌지 못하고 그저 살아온 관성대로 무력하게 연명해갈 때가 많다. 멀리서 딸아이가 오니 좋아하는 만두를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벌인 일이 주방기구가 총동원되는 대공사로 변하고 마지막에 영락없이 피가 몇 장 남았다. 남은 만두피를 보니 오래 묵은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만두피를 뭉뚱그려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결국 인생 후반의 지혜란 버려야 할 일과 지녀야 할 일을 가리는 것.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이 번잡한 짓마저 멈출 수 없으랴. 한 점 망설임 없이 선언하노니, 만두 너, 이제 내 주방에서 끝이다!’고 뇌였다. 속 알차고 겉 미끈한데다 값도 착한 만두에, 살얼음을 띄워 만든 레몬 소주, TV 화면 대신 정원이 내다보이는 만두집이 있다면 평생 단골하리라./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